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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보석… 쇼팽의 선율과 안익태의 숨결이 흐르는 섬, 팔마데마요르카 !
여행기

지중해의 보석… 쇼팽의 선율과 안익태의 숨결이 흐르는 섬, 팔마데마요르카 !

2026.07.24· 정영훈 (주)크루즈나라 부사장

로마부터 바르셀로나를 잇는 서부지중해 크루즈의 하이라이트, ‘팔마데마요르카’의 낭만을 걷다

팔마데마요르카 항구 전경 [ 뉴스인 ] 정영훈 여행전문 칼럼니스트 = 서부지중해 크루즈 일정도 어느덧 절반을 넘었다. 치비타베키아(로마) ~ 사보나 (제노아) ~마르세유~바르셀로나를 거쳐 오늘은 지중해 발레아레스 제도 (마요르카 섬,메노르카 섬, 이비자 섬, 포르멘테라 섬)의 팔마데마요르카로 향한다. 팔마데마요르카는 오래전 고대시대부터 온화한 기후와 전략적 요충지라는 성격 때문에 지중해의 패권을 노린 수많은 세력들의 격전지였다. 기원전 123년 로마의 영토가 되었고, 서로마제국이 흔들리던 AD465년경부터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의 지배를 받았고, 707년 이후에는 이슬람 세력이 팽창하면서 그들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다. 이후 1229년 아라곤의 제임스 1세가 이곳에 함대를 보내 이슬람세력을 몰아내면서 이후 스페인 영토가 되었다.

발데모사 마을 전경 팔마데마요르카는 일년 365일 300일이 화창한 날씨이고 연평균 기온이 18.2도로 항상 온화한 기후 그리고 깨끗한 공기를 가지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이다. 헐리웃 스타, 스포츠 스타들의 별장이 즐비하다고 한다.

발데모사 마을 이정표

발데모사 마을 거리 팔마데마요르카는 1950년대부터 시작된 유럽의 관광 대중화의 효시로 평가받는 곳이다. 그리고 팔마데마요르카의 관광 대중화의 물꼬를 튼 것은 "프레드릭 쇼팽과 조르드 상드 스토리"의 관광상품화였다. 실제로 쇼팽과 조르드 상드가 이 곳 팔마데마요르카에 머문 기간은 3개월 남짓에 불과하나, 서정적인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그들의 흔적이 있는 곳을 관광명소로 만든 것이다.

발데모사의 카르투아 수도원(쇼팽 흉상)

발데모사의 카르투아 수도원(쇼팽 박물관)

발데모사의 카르투아 수도원(쇼팽 박물관)

발데모사의 카르투아 수도원(쇼팽 박물관)

발데모사의 카르투아 수도원(쇼팽 박물관)

발데모사의 카르투아 수도원(쇼팽 박물관) 팔마데마요르카의 발데모사 마을의 카르투아 수도원이 바로 그 장소이다. 폴란드 출신의 천재 피아니스트 쇼팽이 파리에 진출한 것은 1835년경이라고 한다. 당시 무명이었던 쇼팽은 우연한 기회에 이미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평가받고 있었던 리스트와 만나게 되었다. 쇼팽의 실력을 한눈에 알아 본 리스트는 쇼팽의 파리 무대 데뷔를 적극 추진하였고, 그 과정에서 파리 사교계의 여왕이었던 소설가 조르드 상드와도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조르드상드는 첫눈에 쇼팽에게 반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조르드상드는 이미 딸 둘이 있는 유부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리스트와 상드의 적극적 후원으로 쇼팽의 파리 무대 데뷔는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이후 건강에 문제가 있던 쇼팽의 폐결핵이 악화되면서 1838년 11월 요양을 위해 날씨가 온화하고 공기가 좋다는 팔마데마요르카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보수적인 마을 주민들의 눈에는 미풍양속을 헤치는 불륜 커플에 불과하였기에 배척당하면서 그들이 머물 숙소 조차 구하지 못하였다. 숙소를 구하지 못한 쇼팽과 상드가 임시거처로 간 곳은 당시 버려져있던 발데모사 마을의 카르투아 수도원이었다. 더욱이 도착 당일 비까지 내리는 가운데 상드는 먹을 것을 구하러 마을로 갔다. 헛간에서 간신히 비를 피하고 누워있던 쇼팽은 구멍뚫린 천장에서 빗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악상이 떠올랐다. 바로 쇼팽의 대표적 피아노 전주곡인 "빗방울 전주곡"이 탄생한 것이다. 이후에도 마을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과 악천후의 날씨가 이례적으로 계속되어 결국 1839년2월11일 이곳을 떠났다고 한다. 짧은 3개월이었지만 쇼팽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발데모사 수도원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매년 2월11일에 이곳 발데모사 수도원에서는 쇼팽 음악제가 열린다고 한다. 더불어 현재 수도원은 쇼팽 박물관으로 만들어져 쇼팽의 유품과 피아노, 악보 등이 전시되고 있다. 운이 좋아 시간이 맞으면 "작은 쇼팽 연주회"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쇼팽의 흔적이 있는 이곳에서 "빗방울 전주곡"을 들으니 괜히 센치해진다.

팔마 시내 안익태 기념 조형물

팔마 시내 안익태 기념 조형물 팔마데마요르카에는 우리와도 아주 밀접한 인물의 흔적도 있다. 바로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의 흔적이다. 제2차세계대전때 파리 주재 스페인 대사의 주선으로 바르셀로나로 이주하여 그 곳 유지의 딸과 1946년 결혼후 보금자리로 정착한 곳이 팔마데마요르카이다. 안익태 선생은 1947년 마요르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창단하여 돌아가신 1965년까지 종신 지휘자로 활동한 마요르카의 명사였다. 2006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팔마시에서 중심가에 "안익태 기념 조형물"을 만들었다. 이 곳을 방문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모두 애국가를 제창하게 된다.

팔마데마요르카 대성당

팔마데마요르카 대성당 팔마시의 해안가에는 거대한 성당이 우뚝 솟아있다. 팔마데마요르카 대성당이다. 1230년~1601년까지 건설된 큰 성당으로 높이가 무려 44m로 유럽에서 두번째로 높은 성당이다. 또한 성당의 정면과 후면에는 지름 14m의 거대한 장미창이 있는데 이 역시 유럽에서 두번째로 큰 스테인드글라스 창이다. 팔마 대성당은 역사적 의미 이외에 불세출의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손길이 닿은 성당으로도 유명하다. 1904년~1914년 기간동안 팔마 대성당 주교의 요청으로 성당의 내부를 대대적으로 보수하는 역활을 하였다. 벽돌로 막힌 창문을 열어 가우디 특유의 자연채광을 더 받을 수 있게 하였고, 주교의 설교대, 거대한 촛대 등을 만들었다.

팔마데마요르카 대성당 내부 안토니오 가우디의 흔적

팔마데마요르카 대성당 내부

팔마데마요르카 대성당 내부 미겔 바르셀로의 작품(오병이어의 기적) 팔마데마요르카 성당 내부의 가장 최근 작품으로는 2001~2007년 기간 중 미켈 바르셀로(Miguel Barcelo)가 만든 "오병이어의 기적"을 주제로 만든 작품이다. 종종 안토니오 가우디의 작품으로 오해 받기도 한다.

팔마데마요르카의 벨베르 성

팔마데마요르카의 벨베르 성

팔마데마요르카의 벨베르 성 늘 화창한 팔마의 날씨가 오늘은 변화무쌍하다. 해가 비치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구름도 끼었다가 걷히기도 하고 종잡을 수가 없다. 잠시 화창해진 날씨를 틈타 팔마시 전체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있는 벨베르 성을 찾았다. 유럽 유일의 원형 성벽을 가진 성으로 처음 이곳을 정복한 아라곤의 제임스1세의 별궁으로 지었으나, 그 후 오랜기간 동안 정치범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바다가쪽을 바라보면 팔마시의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팔마데마요르카는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다양한 매력을 가진 섬이다. 온화한 날씨, 맑고 깨끗한 공기 거기에 더해 재미있는 쇼팽과 조르드 상드의 러브 스토리까지 그리고 가우디의 손길이 묻어있는 웅장한 성당까지 매력 덩어리의 섬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안익태 선생의 흔적과 얼마전 이강인 선수가 뛰었던 마요르카FC(현재는 파리생제르망 소속)까지 우리와도 깊은 인연이 있으니 말이다. 서유럽 여행을 계획한다면 일정에 팔마데마요르카를 추가하기를 권한다. 결코 후회하지 않을 곳이다!

정영훈 여행전문 칼럼니스트 newsin@newsin.co.kr